Page 10 - 어포삼랑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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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은 어떤 궁일까요?
‘창경(昌慶)’은 창성할 ‘창(昌’)과 경사 ‘경(慶)’이 합쳐진 말로 ‘즐거운 경사가 넘
치는 궁궐’이란 뜻입니다. 창경궁의 옛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입니다. 수강궁은
1418년 즉위한 세종이 상왕이 된 아버지 태종을 위해 지은 궁입니다. 태종이 수
강궁에 머무는 동안 세종은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기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문안
을 올렸다고 합니다.
태종의 승하 이후 수강궁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야 했던 단종이 잠시
머물렀습니다. 병든 세조도 말년에 수강궁에 머물다 승하했습니다. 그래서 예종
은 세조 승하 전에 수강궁에서 후계자로 지명받고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를 하였
습니다.
이후 1483년 성종은 수강궁을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꿉니다. 할
아버지 세조의 비인 대왕대비 정희왕후, 후에 인수대비로 불린 생모 소혜왕후 그
리고 예종의 계비인 안순왕후를 모두 모시기엔 당시 수강궁이 낡고 좁았기 때문
입니다. 이때부터 창경궁은 대비를 비롯한 왕실 여인들의 내궁이자 왕실 사람들
을 모시는 관리들의 생활공간으로서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창경궁은 위로는 창덕궁, 아래로는 종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왕실 가족들이 창
덕궁과 창경궁을 하나의 궁궐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 둘을 합쳐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전이란 뜻으로 ‘동궐(東闕)’이라고 불렀습니다.
연결된 두 궁전은 후원도 같이 사용했습니다. 공동의 후원은 공간의 성격에 따
라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춘당대는 통치활동에 필요한 행사의 장소였고, 존덕정
과 옥류천 영역은 왕의 휴식공간이었습니다. 후원의 서쪽엔 군사주둔과 훈련을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특히 춘당대는 정조가 군사들의 훈련을 지켜보거나 직접
열병식을 주관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정조의 친위군사인 장용영(壯勇營)도 춘당
대에서 치러진 무과시험과 승진시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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