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어포삼랑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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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明政殿)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정사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궁중연회 등 국가행사가 치러지는 공간으로, 명정전의 앞마당에
는 품계석이 있습니다. 왕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무신, 왼쪽에 문신이 자리합니다.
또한 명정전을 오르는 계단 중앙엔 답도(踏道)가 있어 임금님이 가마를 타고 그
위를 지나갔습니다.
창경궁에는 이외에도 영조가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들은 홍화문(弘化門), 성균
관 유생과 종친들을 접견하던 숭문당(崇文堂), 신하들과 경연을 하던 함인정(涵仁
亭)등이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세자가 머무는 동궁(東宮)과 세자의 문무교육을 담
당한 시강원(侍講院), 세자가 공부하던 시민당(時敏堂)도 모두 창경궁에 있었습니
다.
이렇듯 조선 후기에 왕실과 더욱 밀접해진 창경궁은 그러나 대한제국 말, 일제
에 의해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조선의 권위를 깎아내리기 위해 왕실 가족의 생
활공간이자 정치의 중심공간인 창경궁에 일제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훼
손했기 때문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6년 대한제국엔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됩니다. 그
해 3월 1일,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취임합니다. 통감부는 1906년 2월
부터 1910년 8월까지 일제가 대한제국을 완전히 뺏기 위해 설치한 기관입니다.
일제의 침략야욕에 분개한 국민들은 1907년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키
고, 고종황제는 비밀리에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해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세
계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고종황제는 강제 퇴위되어 덕수궁으로
가게 되고, 황제가 된 순종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주축으로 한 일제는 1907년 11월, 창경궁 6만 여평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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