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어포삼랑13호 9-10월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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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수원화성이 있던 수원유수부를 1793년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킵니다. 그러나 경기도 관찰부의 소재지이기도 했던 화성유수부는 1895

            년 수원군으로 지위가 격하되고, 1910년엔 관찰부가 서울로 이사하며 수원면이

            됩니다. 광복 후 도시가 재건되고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수원면은 수원
            시로 승격되고, 이때 화성군이 분리되었다가 2001년 화성시로 승격합니다.



            수원화성에 담긴 정조의 꿈

             아버지의 무덤을 옮기며 만든 수원화성은 1796년 9월 완공됩니다. 수원화성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이 담긴 건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조의 이상과

            꿈이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당파정치를 근절하고 강력한 왕권정치를 하는 중심지이자 상
            업, 농업, 공업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당시 한양은 정치는 물론 경제도

            노론 중심이었습니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한양의 권력을 분산하고, 이
            곳을 농업과 상공업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계획단계에서부터 농사

            를 위한 여러 저수지와 농토를 만들고, 팔달문 밖에 남시장, 북수동에 북시장이
            들어서게 합니다. 금융지원도 합니다. 전국에서 오는 상인들이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주고, 제지수공업의 발전을 위해 4천냥을 지원해 제지
            공장을 세우게 합니다. 이런 다양한 정책적 지원은 수원이 화성으로 거듭나 단기

            간에 큰 도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수원화성은 위치적으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남도로 가는 길목이자 서해바다로
            나가는 길에 자리해 있습니다. 육로와 해로가 모두 통하는 화성을 정조는 교통의

            요지뿐 아니라 군사요충지로도 활용합니다. 당시 수도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으로
            북쪽엔 북한산성, 동쪽엔 남한산성, 서쪽엔 강화도성이 있었습니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지음으로써 군사적으로 남쪽을 보완합니다.
             정조는 또한 화성을 건설하며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도 새로 만듭니다. 장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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